
지난 주에 이사 온 아파트에서 내려다 본 고속 터미널의 버스들. 모든 운전기사들도 후진 주차를 완벽히 할 수 있어야겠지만 주차 순서와 위치를 정하는 일이 가장 어려울 것 같다.
Google Wave를 보면서 구글의 기술력에 대해 다시 한 번 감탄했지만, 이메일을 대치하겠다는 대담한 (혹자는 오만하다는) 시도가 성공할지는 사실 미지수이다.
기술의 진보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통신 방식이 계속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Google Wave는 특히 실시간 인터넷, 클라우드 컴퓨팅, 개방 플랫폼 등 최신 트렌드를 모두 반영하면서 이메일과 IM, Wiki를 결합하고 거기에다 환상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스펠 체커와 실시간 번역기능까지 붙여놓아서, 데모 비디오를 보고 있자면 계속 감탄사 밖에 안나온다. 그런데 과연 이메일과 IM, Wiki를 하나로 합치는 것이 구글러나 비슷한 류의 사람들이 아닌 일반 대중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른 통신 수단은 각각 다른 제약을 가지지만 그 제약 때문에 특정한 상황과 용도에 더 잘맞는 수단일 수 있다. IM은 이메일보다 웬지 더 개인적인 것 같고, SMS는 인사 치례없이 딱 할 말만 해도 양해가 된다. 이메일은 즉시 답하지 않아도 별로 눈치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Wave의 경우는 이런 제약이 하나도 없다. 과연 모든 기능의 superset을 가진, 그러면서도 별로 단점은 없어 보이는 통신 수단을 사람들이 반기고 받아들일까?
Google Wave의 또 다른 측면은 SN (Social Network) 툴로서의 가치이다. Wave는 그 자체로 이미 폐쇄적인 ad hoc SN의 특성을 갖고 있으나, Wave를 embed할 웹페이지만 있으면 당장 퍼블릭 SN 플랫폼으로 변할 수 있다. 사람들간의 관계를 정의하는 방식에 있어서 이메일과 거의 비슷한 semantic을 갖는 Wave가 SN 툴로서 사용될 때, “이 사람과 친구입니까? (Y/N)” 식으로 인간 관계를 단순화 시켜버리는 기존 SN에 비해 loosely-coupled된 유연한 SN이 형성될 수 있다. 처음부터 다양한 플러그인을 지원하고 media-rich한 웹 기반의 통신 수단으로서 Wave는 기존 이메일을 대치하기보다 새로운 실시간 SN의 기반 플랫폼으로서 먼저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앞으로 GWT가 널리 사용될 것이라는 점이다. GWT는 기술의 우수성에도 불구, (특히 구글의) 메이저 서비스에 적용된 적이 없기 때문에 완성도나 안정성, 그리고 앞으로 지속적인 개발 여부 등에 대해 확신을 가지기 어려웠는데 이번에 Wave에 적용되면서 그 기능의 극한을 보여줄 수 있었고, 구글이 앞으로도 계속 이를 유지 발전 시킬 것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Google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Death Star의 중력 가속도는 3.5303614E-7으로서, 지구의 3.6E-8 배 밖에 안된다. 그런데 공식 자료에 따르면 Death Star는 직경이 120km로서 지구의 0.00942배 정도 된다. 표면 중력은 질량에 비례하고 반지름의 제곱에 반비례하므로 평균 밀도가 같다면 표면 중력은 반지름에 비례한다. Death Star의 평균 밀도가 지구와 같다면 표면 중력은 0.00942 x 9.8 m/sec^2 이 되어야 하지만 Google에 따르면 3.53E-7 밖에 안되므로 Death Star의 평균 밀도는 지구의 3.824E-6 배로서 비중이 2.11E-5 밖에 안된다.
스타워즈를 볼 때마다 그토록 큰 구조물이 어쩌면 저렇게 허술할 수 있을까 궁금했었는데, 이제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Death Star의 내부는 텅 비어있었던 것이다. 하청업체에서 자재를 빼돌려서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밀도가 낮고, 처음부터 설계가 그렇게 된 것이 틀림없다. Death Star보다 훨씬 작은 크기로도 행성을 파괴할 수 있는 1E32 joule 의 수퍼레이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기술이 아닐 수 없으나 굳이 그렇게 크게 만든 것은 대부분의 제국들이 그렇듯이 통치하에 있는 다른 별들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일종의 허풍이었던 모양이다.
예전에 본사 (미국) 엔지니어를 만났을 때 그럴싸한 문구가 있는 티셔츠를 입고 있길래 어디서 샀냐고 물었더니 ThinkGeek에서 샀다고 해서 부러워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봤던 티셔츠 문구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ThinkGeek에서 파는 티셔츠는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것이다 (이 블로그를 읽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해하지 않을런지?)

물론 우리나라로 국제 주문할 수도 있겠지만 티셔츠 한장에 국제 우송료를 부담하면 배보다 배꼽이 클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커스텀 디자인으로 1벌이라도 주문을 받아주는 곳이 있으려니 하고 찾아봤더니 어렵지 않게 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마켓프레스라는 곳인데, 동대문 옷가게의 온라인 샵이라기 보다는 웹2.0스러운 사이트이다. 여기서 시험적으로 주문해본 티셔츠:

XL가 105~110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는데 실제로는 110 정도라서 내겐 좀 컸다는 점 외엔 옷감의 질도 괜찮았고 가격도 우송료 포함해서 19,000원으로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았다.
파워포인트로 디자인한 후 PNG로 업로드했고 터치휠까지 넣어볼까 하다가 배가 강조되어 보일까봐 생략. 타이틀은 애플의 iLife와는 전혀 관계없고 i’s box류의 엉터리 영어 (물론 사진은 거울 앞에서 찍은 후 좌우 반전한 것임).

우리 회사 부근은 광화문에서 버스 한 정거장 거리밖에 안되는데도 몇몇 큰 건물 외에는 다 허물어져가는 기와집이 즐비한 – 그래서 골목 이름도 “토담길” – 21세기의 서울과 참 안어울리는 그런 곳이다. 지하철이 두 노선이나 지나가는데도 개발이 안되는 것이 인근의 프랑스 대사관 때문이라고도 하고, 철도길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아뭏튼 점심 때 걸어갈만한 거리에는 손님을 모실만한 번듯한 식당이 거의 없다는 것이 불편한 점 중 하나였는데, 언젠가 “충정각”이라는 이름의 그럴싸한 분위기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생겼다. 첨엔 “이 동네 식당이 분위기 낸다고 해봤자…”하고 무시했으나 점심 메뉴는 썩 비싸지도 않고 해서 한중일식이 지겨울 때 종종 들르는 곳 중의 하나가 되었다.
오늘도 외부에서 손님이 와서 충정각에 갔는데, 1층에 자리가 부족하여 2층에 올라갔더니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무려 전투 헬리콥터(위의 사진은 다른 곳에서 찾은 것. 충정각 2층은 절대 저렇게 넓지 않다)! 꽤나 특이하고 정교하여 동료들과 과연 저 옆에 달려있는 터빈이 이륙할 때에도 사용되는 것인지 논쟁하고 있는데 누가 다가와서 “이건 지금 전시 중인 작품이고 제가 큐레이터인데 설명해드릴까요?”라고 한다. 그래달라고 했더니 본체는 바나나 우유, 터빈은 요구르트병을 나타내는데, 예전 우리나라에 분식이 처음 도입될 당시 동양인 중에는 유제품이 체질에 잘 안맞는 사람이 꽤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을 서구식 체형으로 만들기 위하여 “전투적”으로 우유가 반강제적 배급되었던 것을 상징한다고 했다.

점심을 먹고난 후 이번 <내일을 향해 쏴라>전의 다른 여러 작품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미술쪽으론 영 문외한인 무식한 공돌이에게는 그저 “특이하네”, “기발하네” 정도의 생각 밖에 들지 않았으나 그 중 그래도 맘에 들었던 것은 아래의 작품 <옆집 사람들>.

아뭏튼 오랫만에 그것도 회사 부근에서 예술 감상을 하게 되니 찌든 머리에 비타민이라도 공급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예전에 부시가 미국 대통령이 된 후 얼마동안 미국인들에게 어떻게 부시가 대통령이 되었냐고 물어보면 다들 부끄러워했었다. 앞으로 한동안 본사(미국) 동료들이 한국 대통령에 대해 물어보면 같은 기분이 들 것 같다.
얼마 전부터 정기 구독하는 책이 하나 더 늘었다.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고등학교 동기가 전화를 해서 요즘 동문회는 왜 잘 안나오냐, 누구 누구는 만나냐 등 얘기를 건네더니만 자기가 신문사에 있는데 주간지 하나 정기 구독해달라고 했다. 안그래도 너무 이공계 글만 많이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평소에 갖고 있었기에 선뜻 그러겠다고 했는데 나중에 회사 사람들하고 얘기하다보니 잡지 팔기 위해 요즘 많이들 쓰는 수법이라고 했다.
오랫만에 정치, 사회적 성향이 강한 잡지를 보니 예전 생각이 났다. 특히 “안기부가 나를 재판했다”와 같은 글을 읽으면서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다 지난 날의 얘기다. 민주화되고 심지어는 정부가 권위까지 잃었다고 하는 요즘에는 이런 일이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는 것 아닌가.
요즘 읽고 있는 책 중에 “컬처코드”라는 책이 있다. 언젠가부터 책 하나를 끝까지 읽 지 않고 자꾸 다른 책을 읽기 시작하는 안좋은 습관이 생겼는데 컬처코드 역시 그래서 마무리하고 있지 못하는 책 중의 하나. 이런 류의 책들은 대개 첫 한두 챕터는 재밌는데 그 뒤로는 그 얘기가 그 얘기인 것 같아서 흥미가 떨어져버린다. 아뭏튼 이 책에서 미국과 유럽의 문화 코드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데 좀 과장되고 전형화시켜버린 감이 없지 않으나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는 얘기들이기도 했다. 읽다 보니 우리나라 문화의 코드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의 코드는 “생존”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에선 무슨 일이건 “생존”의 문제일 뿐더러 “생존”이 걸린 일이라면 뭐든지 용서되기도 한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 부터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아온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내가 고3이 되었을 때 하신 말씀이 “죽지 않을 만큼만 공부해라”였고 나중에 동생이 고3이 되니까 “죽었다 하고 공부해라”고 하셨다. 또 웬만한 일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데”라고 하면 용서되기도 한다. 이런 문화의 장점은 뭐든 열심히 해서 이뤄낸다는 것이지만 단점은 “생존”의 코드가 정의나 법규보다 상위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아마도 과거 옳지 못한 일에 관여했던 안기부나 사법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다들 먹고 살자고 했던 일이라던가 자신의 생존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할 것이다. 그 시절에도 그런 일 안하고, 욕심내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과연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독재 권력은 미얀마 같은 후진국의 얘기일 뿐일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번의 삼성 비자금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단지 권력이 정권에서 재벌로 넘어간 것은 아닌지. 기업인들의 항변은 한결같다: “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다 그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